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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독후감

우리는 '표백' 되었는가? -장강명의 '표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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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을 읽어 본 건, 예전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이 유일할 것이다. 그 작품 역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만연했다. 이번 소설 <표백> 또한 다르지 않다. 대학교 때 같이 어울려 다녔던 멤버인 '세연'의 그림자에 쫓겨 살아온 5명의 인물. 적그리스도라 불리는 화자인 '나'와 소크라테스 '휘영', 재프루더 ' 병권', 루비 '추' 그리고 하비 '선우'. 

 이야기의 시작은 선우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어느 이야기가 그렇듯 첫 죽음이 던지는 여파는 크지 않다. 이 죽음이 얼마나 큰 파장을 가지고 올 지 역시, 처음에는 잘 모른다. 선우의 죽음이 그렇다. 처음에는 타살로 보이지만 이는 엄연한 자살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미래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점인 동시에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시점을 동시에 사용한다.

 '1006. 하느님이 등장하면 모든 게 망가진다'로 시작하는 '와이두유리브닷컴'의 게시글은 미래에서 작성되는 일종의 메시지다. 처음 조각이 맞춰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어안이 벙벙해진다. 똑같이 '와이두유리브닷컴'에 올라와 있는 '자살 선언'과 그에 따른 세연의 주장은 책에서도 나왔다시피 이완 카라마조프에게 속삭이는 작은 악마와 같다. 심적으로는 거부감이 들고 뭐라 반박하고 싶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괴변만은 아닌 소리. 

 세연은 거기서 우리 청년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우리는 뭔가 대단한 것을 하려고 해도, 이미 앞 세대들이 이룩한 토대 위에 새로운 무언가를 이루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야망이 있어도 그것을 실현시키기보다는 기존 통념에 맞춰 씻겨나가고 동일시되어가는 일종의 '표백세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저항을 위해 자살이라는 행위로 세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여기에 옮겨 적고 보면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 역시 세연이 말한 바대로 이미 표백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하얀색 벽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완벽해서 그 어떤 색도 더하지도 빼지도 못하는 완벽함. 우리는 그 완벽함 속에서 질문을 던지지만 곧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재빨리 찾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너. 무. 도 위대한 하얀 벽에서 배제되어 버리고 탈락해 버리니까. 

 세연은 이 과정을 위대한 좌절이라 칭하며, 그들이 만든 완벽한 벽 앞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앞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틀이 아닌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연이 말하는 우리가 가진 마지막 무기는 바로

자. 살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두렵다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또 거기에 동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가하는 내 이성이.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내가 했던 많은 말 중에 하나는 '하다 안 되면 죽지'였다. 지금보다 많이 어리지도 않은 그 시절. 나에게 죽음은 안되면 말고라는 내가 숨을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 어떤 것도 죽음 앞에서는 용서가 되고 잊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약 죽게 되면 세상은 나에게 무척 힘들었겠구나 하는 이해를 내보일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연은 이런 죽음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 중 4위를 차지하는 사망 원인이 바로 자살이다. 자에게는 소중한 목숨이지만 세상에 입장에서는 '사람이 죽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결국 아무런 메시지도 던지지 않는 죽음은 그냥 '쯧쯧'하는 안타까움만 내보이지 나에 대한 어떤 이해도 파장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거다.


 저자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의 20대에게는 '언젠가는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글감으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 / 정말 그런 희망이 허락되지 않은 걸까? 이 소설에서 세연이 펼치는 주장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까? /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세연의 행보를 보면서 나는 몇 가지의 장면과 작품이 머릿속에 스쳤다. 하나는 <20세기 소년>이라는 만화책인데, 어린 시절 했던 장난을 실제로 현실로 만들어 버리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겐지는 이를 돌려놓기 위해서 장난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친구'라는 인물을 뒤쫓는다. 꼭 소설 속 '나'가 세연의 그림자를 쫓아가 듯. 

 또 다른 작품은 <옆 집에 신이 산다>라는 작품이다. 이는 신이 정말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옆집에 사는 술주정뱅이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인 꼬마 여자아이는 술주정뱅이 신에게 벗어나 오빠인 그리스도처럼 자신만의 신도를 만들고 자신만의 성경을 만드는데, 세연의 모습이 이 꼬마 신 같아 보인다. 어쩌면 세연이 의도한 바가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점이다.

산다는 건 어렵다. 한 가지 길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을 함부로 가기에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반통행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길이 누군가에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어쩌면 이 소설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을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던 아이가, 밟지 않은 곳이란 한 군데도 없는 눈밭을 만났을 때 하는 행동을 그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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