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큰 허탈감을 느낄 때, 스스로 이렇게 자조한다.
"왜 살지?"
그렇다.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이고, 거리에 걸어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없던 시절, 이런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멋이라 느꼈던 시절,
나 역시 스스로에게 많은 의문을 던졌고,
알 수 없다 라는 말과 몰라 라는 말이 입버릇 처럼 툭 뛰어나오곤 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이유를,
내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라는 허무맹랑한 말로 포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 언 발에 오줌누기랑 다를바가 없는 괴변일 뿐이었다.
아침마다 책을 읽으면서 오느데 그 곳에서 조금이나마 그 해답을 본 것 같아.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다.
인생의 목적을 길게 보지 마세요. '왜 사냐?'라는 오만한 질문을 하지 마세요. '오늘 좋았나?' , '지금 이 시간이 좋은가?' 그것에 집중하세요. 항상 헷갈리면 지금 감각에 집중해야 해요. '내가 이 모임이 좋은가?', ' 이 사람과 같이 있는게 좋은가?,' 이 책이 좋은가?' 이것만 집중하세요. '이 책을 다 읽은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러지 말고, 지금 순간에 집중하세요. - "강신주의 다상담1" 중 p.236
그렇다. 내가 지금껏 의문을 던진 내용들은 다 부질없는 말이었고, 내용이었다.
지금 당장, 만족하고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었다. 이런 비슷한 말이 '모모'라는 책에서도 나왔다.
모모가 청소부 아저씨에게 어떻게 이렇게 긴 길을 다 청소하냐고 묻자 아저씨는 웃으면서
긴 길을 모두 보고 청소를 하면 금방 지치게 되지, 이렇게 긴 길을 청소할 때는, 바로 앞에 있는 청소할 곳만 보고 청소를 하면 돼.
그렇게 조금씩 보이는 곳을 청소해 나가면 결국에는 언제 다 할 것 같았던 아찔한 긴 길을 다 청소하게 되지.
이 이야기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굳이 지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까?
조선의 왕들도 죽고 나서 왕의 명칭이 정해지고 그들의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굳이 미리 우리의 일들을 정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다만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가고 목표해가는 것. 그리고 그 일에 지금 우리의 감각에 그 일이 좋고 싫음을 판단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바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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