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소설은 사실 처음 읽어본다. 그전에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뭔가 필자랑 감성이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이번에 독서모임 덕택에 처음으로 읽게 되었는데 책 제목은 '아주 오래된 농담'이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한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이며,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한 사내(심영빈)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너무나 첫사랑 같은 소설이며 어떤 면에서는 너무 파격적인 느낌도 있다.
여기에 나오는 현금은 매우 치명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여성으로 나온다. 분명 이 글을 썼을 당시에도 보기 힘든 인물이었겠지만, 현재에도 현금과 같은 인물은 보기 힘들 것 같다. 얼핏 스치기로는 '나혜석'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혜석보다는 조금 더 현대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어쩌면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현금을 통해서 만들어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는 단편처럼 끊어지면서도 장편 고유의 연결성을 잘 살아있다. 이야기가 끊기지 않으면서도 앞의 내용과 연결성을 가지는데, 그 부분에서 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캐릭터의 감정묘사가 잘 드러난다. 특히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심영빈이라는 사내를 보면서 어쩌면 이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주체성이 많이 떨어졌고, 그러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느낌의 인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의 모습을 보면 과거에 억눌러서 현재를 겨우 버티며 살아가는 현 시대의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일탈을 꿈꾸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금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이 애달프기도 하다.
그에 반해 현금이라는 여성은 무척 당차고 매력적이다.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그녀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는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꿈꿨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힘들어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쳤다.
현금의 이런 태도는 현재를 버티는 심영빈과 대비된다. 그 두 명을 서로 마주보게 배치하면서 이야기는 조금 더 쫀득쫀득함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씨실이 있으니 바로 영빈의 아내이다. 영빈의 아내는 어쩌면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책에서도 많이 등장하지 않고 언제나 주위 배경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존재감이 나중에는 큰 반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입체적이지 않다는 것은 부정의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심지가 굳고, 자기만의 뚝심이 있다고 보게 만든다. 영빈의 아내가 바로 이런 캐릭터다. 그녀는 지극히 보수적인 집안의 여성으로 존재해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지녀온 묵직함이 결코 영빈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 못지않다는 것을 드러난다. 그러면서 이 여성의 위대함을 더욱 찬란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영빈의 아내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물론 필자의 이런 해석을 유쾌하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겠지만, 처음 이 글이 쓰여진 상황에서 보면 그녀 또한 매력을 지닌 한 명의 캐릭터이며, 과거의 시대상의 시점에서 미래의 시대상으로 연결되는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소설은 참 재미있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소설 자체는 오래되어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리고 조금 애매했지만, 그 당시의 감정과 이해관계를 무척 알기 쉽고 재미있게 그려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게 필자의 감상이다. 그러면서 다시금 박완서라는 작가의 대단함에 감탄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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