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의 애쓰지 않아도라는 책은, 그녀가 엮은 짧은 소설 모음이다. 우리가 흔히 단편이라고 부르는 길이보다 더 짧은 길이의 소설이며, 지하철을 오가거나 친구를 기다리는 몇 분 사이에 읽기 좋은 소설 10개 정도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특히 짧은 소설 시리즈는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에서 시리즈물로 내고 있는 작품으로 지금 소개하는 최은영 작가 이외에도 여러 작가들의 책들이 있다. 만약, 최은영의 ‘애쓰지 않아도’를 읽고 마음에 든다면 ‘마음산책’의 다른 짧은 소설 시리즈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글쓰기 호흡이 긴 나에게 짧은 글쓰기는 매번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의식하지 않으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순간순간 멈춰 최대한 힘을 빼고 경직되지 않으려 했다. 억지로 애를 쓰고 힘을 들이면 삶도, 글도 더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일, 그것이 내가 내. 글과 나에게 보여야 할 유일한 태도라는 것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배웠다. 무리해서 애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호흡을 따라가려 했다.
어쩌면 여기에서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다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책을 통해 어쩌면 너무 사소할 수 있는 일상의 한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적어냈다.
이 책에 나오는 10개의 이야기는 어쩌면 각기 다른 이별의 이야기이다.
애쓰지 않아도
데비 챙
꿈결
숲의 끝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한남동 옥상 수영장
저녁 산책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문동
호시절
손편지
임보 일기
안녕, 꾸꾸
무급휴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표제작인 [애쓰지 않아도]가 아니라 [꿈결]이라는 작품이었다. 특히, 꿈에 잠식을 당하면서까지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다시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인 그녀가 얼마나 그를 잊고 싶지 않았는지 알게 해 준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비유이다.
윤이는 우리의 삶이 학교라면 한 학년이 15년이라고 말하곤 했다. 태어나서 열다섯까지 1학년, 열여섯부터 서른까지가 2학년, 서른부터 마흔다섯까지가 3학년…… 명이 길어 아흔까지 산다면 6학년을 졸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윤이다운 엉뚱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정민은 그 이야기를 오래 의식했다. 그런 셈법을 사용한다면 정민은 윤이와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에 헤어진 거였다. 정민의 2학년은 윤이로 가득했다. 그 학년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는 윤이였다
윤이의 비유에서 자연스럽게 학교 때 있었던 일과 같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흐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비유에서 끝나지 않고 비유와 현실을 넘나드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이런 비유 말고도 [꿈결]이라는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화자인 정민의 심정이 필자인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무리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감정을 잘 숨긴다면 윤이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정민은 마음을 다스렸다. / 윤이의 인내심은 정민보다 강하지 못했다. 윤이는 정민이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면 정민을 친구로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윤이는 정민에게 어쩌면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무언가를 도전하지 않으면 결국 현재의 상황도 유지하지 못하고 다 사라져 버리고 말 거라고. 그러니까 자신의 감정을 다해 이야기하라고 말이다.
너는 진짜였고 나는 그게 무서웠지.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네가 내 안에서 무언가 좋은 걸 본다면, 그건 오해일 뿐이고 넌 네가 속았다는 걸 곧 알아차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떠날 거라고. 난 그걸 견딜 수 없을 테고.
하지만 정민의 진짜 마음은 바로 이런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자기의 낮은 자존감에서 시작되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기에 이 꿈껼은 그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꿈결]을 제외하더라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여러 생각거리를 던진다. 짧은 글이기에 수많은 서사를 담을 수는 없지만 여러 상징적인 느낌의 이야깃거리를 독자로 하여금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의 백미는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다. 그림이 서정적이고 너무 예쁘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필자처럼 이북이 아닌 실제 책을 구매해 보는 게 더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 나머지 소설들은 책을 구매해서 읽은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도록 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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