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은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글은 박완서 작가가 썼지만, 글을 고르고 편찬해서 엮은 것은 그녀가 아니다. 생전 작가가 쓰고 발표한 660여 편의 에세이 중에서 글 맛난 대표작 15종을 골라내어 엮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처음 글을 쓸 때부터, 크나큰 역경을 겪고 나서 적게 되는 글까지 모두 담겨있다. 사실 그녀의 글을 보면 시골의 풋풋한 정소가 살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그녀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그대로 그녀의 글에 투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40살이라는 늦다면 늦은 나이에 등단을 한 작가는 자기가 계속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그 순간의 일까지 에세이로 담아내었다.
그런 점을 보면 그녀는 천성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최근에 나온 문학들처럼 속도감 있거나 깊은 심상과 추리 서스펜스적 글쓰기 보다는 담담한 읽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된다. 그리고 가만히 한 글자 한 글자씩 읽다 보면 마치 작가가 아닌 우리 엄마랑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충분히 수다스러우면서도 적당히 걱정스럽고, 단호한 듯 강단 있으듯 하면서도 한 없이 여린. 그녀의 글에는 그런 모든 심상이 다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런 글이 되는 이유는 그녀의 글을 쓰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그녀는 처음 등단이 되었을 때 스스로 '모래만 한 진실이라도' 글에 담으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녀는 자신이 느낀 진실의 한 조각을 그녀의 글 여기저기에 놓아두고 가셨다.
지금 읽다보면 너무 뻔한 소리 같기도 하고, 속도가 느려 재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마치 내 마음처럼 그리고 우리 엄마가 마음처럼 시시 때때로 변화하는 심상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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