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독후감

그 누구도 아닌 동생과 누나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반응형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누군가의 SNS에 올라온 짧은 감상평에 마음에 뺏겨 <82년생 김지영>은 언젠가 꼭 읽어야 하는 나만의 필수 도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우연히 찾은 도서관에서 '관내 열람 도서'에 이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웠다. 그리고 주말 저녁, 다시 도서관을 찾아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천천히 읽어나갔지만 300쪽이 채 되지 않은 짧은 분량과 자연스럽게 읽히는 작가의 역량 덕분에 2시간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말았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먹먹함'이었다.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얼굴들은 우리 어머니와 누나였다. 우리 집은 남자만 세 명이다. 아버지, 형, 그리고 나. 여자라고는 엄마와 누나 둘 뿐이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50년대생으로 갓 6.25가 터졌을 때 태어나셨다. 어머니 또한 54년생으로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철저한 가부장적 경상도 남자로,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철칙을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 손으로 밥을 지은 것도 어머니가 무척 아프셨을 때, 딱 한번 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형, 누나와 나는 나이차이가 꽤 난다. 형과는 10살, 누나와는 8살이다. 정말 소설 속 나오는 막둥이의 모습이 내가 아닐까 한다. 우리 누나 역시 김지영 씨 처럼 초경에 축하받고 한 적이 없었다. 서울로 올라와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어머니 연세를 세아렸는데 어느 새 60이 넘은 거였다. 그렇게 무심히 우리는 또 어머니의 갱년기를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지나쳐 버렸다.

 

 가끔 우스개 소리로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과 남자로써 받게 되는 여러 불합리함이 싫어서 투정 부렸던 거다. 그러나 요즘들어 알게되는 사실이지만, 남자로 태어난 것이 이 사회에서는 많은 혜택을 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우선, 생리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컷다. 얼마 전 인터넷을 떠들석하게 했던 신발창 생리대 문제가 있었다. 그때 처음 생리혈이라는 것이 저렇게 많이 나오는 건줄 처음 알았다. 직장에서 해당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다 생리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말하니, '남자들은 몰라.'라는 소리를 들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은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니라 내 또래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일대기이다. 얼마 전 학교 여자 선배가 본부장 심사 대상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실적도 일도 자기가 잘하지만, 자기 보다 실적이 좋지 않은 남자분이 되었다고 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직도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배하테 이 이야기를 듣고, 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 였다.

 

'그래서 어떻게 바꿔야 하지?'

 

 그런데 답이 안 나왔다. 아니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 문제에서까지 남성의 시각으로 접근한 거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공감이고 인정이 아닐까? 어떤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어디까지 한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남성이 주로 가지는 해결 방법은 주로 그래서 뭘 하면 되지? 하는 거다. 한 편으로는 불도저 같은 면이 있어 쉬운 일들은 금방 금방 해결해 내곤한다. 그러나 가끔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감의 방법과 들어주는 해결 방법이 필요한 듯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시가 뭐고?'라는 시집에서도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사회 모순적 실상들이 자주 튀어나왔다. 오빠들을 위해 공부를 잘 했지만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는 할머니부터, 젊었을 때는 주막에만 살던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만 한 할머니까지. 사실 이 책을 읽고 뭐를 적고 써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맘은 무거운데, 그 감정이 너무 무겁고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책을 통해 봐왔던 내 경험들 뿐. 책을 다 읽고 나서 한가지 든 생각은 이거다. 이런 차별적 구조는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당장은 바꿀 수 없지만 잊지는 말아야 할 듯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