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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독후감

시를 쓰지 않던 숨은 시인들의 숨어 있던 실력 '시가 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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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껏 알게 모르게 여러 문학을 읽어왔다. 학교에서 배운 소설이며 산문 혹은 영화를 보더라도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 우리는 또다른 형태로 문학을 소비해 왔던 거다.

 그런 우리에게 문학이 무엇인지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최근들어 궁금증이 생겨 주위 사람들한테 인문학이 뭔지 물은 기억이 난다. 이렇듯 우리는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해당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단어가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찾지 못해 묻는 게 더 많은 듯하다. <시가 뭐고?>는 나에게 묵직한 물음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사실 한 편의 영화같은 시집이었다는 게 더 맞다.

 

 칠곡군이 <인문학도시 조성사업>으로 시작한 한글 교실에서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시를 쓰기까지, 무수한 노력과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 하나의 물음 앞에 일반인들 앞에서 주름잡고 무게 잡던 것을 탁하니 내려 놓는다.

 

 

 

<시가 뭐고>

 

소화자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헛둥지둥 왔는데

시를 쓰라 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이 시집에 제목과도 같은 이 시는 어쩌면 우리 일상에 시라고 하는 학문의 무게감을 훨훨 날려 준다. 특별한 기교도 없고 멋드려진 수사도 없지만 이 시 하나만으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사실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SNS에서였다. 당시에도 엄청 신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시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다시 읽고 싶었던 시 중에 하나다. 지금 시를 쓰고 있지만, 정작 시에 대해서 모른다고 실토하는 시인 할매는 결국 자기 인생에서의 '씨'를 찾는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재미있고, 소화자 할머니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멋진 시다. 사실 이 시집에서 나를 제일 먼저 웃음짓게 만든 시는 따로 있다.

 

 

<농가 먹어야지>

 

박차남

 

 

마늘을 캐 가지고

아들 딸 다 농가먹었다

논에는 깨를 심었는데

검은깨 농사지어서

또 다 농가먹어야지

깨가 아주 잘났다

 

 

 

 제목이 '농가 먹어야지'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친숙한 경상도 사투리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한번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그제서야 '농가 먹어야지'가 '나눠 먹어야지'로 읽히는 거다. 갑자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수함과 지금껏 경상도 사투리를 잊고 지냈던 나의 지난 시간이 엿보여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여기 있는 시들의 특징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한다. 바로 할머니들의 억양과 성품이 그대로 시에 드러난다. 박차남 할머니의 경우에는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참새>

 

이무임

 

 

점심을 먹고 노인정 간다고

노인정 간다고

골목을 나서니

보리밭에 참새들이

보리를 따먹다가

나한테 들커

훨훨 날아가는

것을 보니

저 참새가 조금한

배나 채워갔는지!

내 양심에 미안하구나.

 

 

 위 참새라는 시에서는 참새라는 작은 새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있다. 시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작은 마음들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한다. <시가 뭐고?> 시집에서 가장 좋았던 시는 사실 따로 있다.

 

 

 

<드디어 그날이다>

 

방용분

 

 

나도 선생님이 된다.

마음이 너무 떨린다 잠도 못잤다

나만 쳐다보는 아이들의 샛별 같은 눈동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옛날에 옛날에 나는 학교를 못 갔다

동생들 빠진 준비물 심부름에

다 떨어진 고무신 신고 담장 너머

빼꼼히 바라만 보았던 그 학교 교실

내것이 아닌 줄 알았다 평생 못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나이 60이 넘어

선생님이 되었다

비록 이야기 할머니 선생님이지만

아이들은 병아리 같은 입으로 네네 선생님 하고

대답한다 그 빠약이 같은 소리에

힘들었던 내 인생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세상에서 가장 기뽀기뽀 기쁘고 즐거운

오늘을 만들었다

장하다

오늘은 나도 선생님이다

 

 

이 시가 좋았던 이유는 순전히 한 구절 때문이다. ' 내것이 아닌 줄 알았다 평생 못 할 줄 알았다' 동생의 학교 준비물을 때문에, 그것도 멋지게 꾸민 모습이 아닌 다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 담 넘어 바라본 교실의 풍경과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내것이 아닌 줄 알았다 평생 못 할 줄 알았다'에 나오는 체념. 어린 엿던 화자가 뭘 안다고 그렇게 체념한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런 심정은 당시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너무 일상적인 것이라 더욱 안쓰러웠다.

 

 

<이레 속고 저레 속고>

 

이분란

 

 

어린 시저레 초등학교 3학년예

아버님 살든 집을 다시 짓타가

다쳐서 병원에 수술을 밧게 댓다

병원생활 일년을 하다보니 엄마가

하신 말씀이 우리 분란이 학교 고마도라

우리집 살림을 사라야 댄다 여자은

공부를 안해도 댄다 하셨다

학교로 안 가니 너무 맘이 아파 밥도 안 먹고

누버서 우럿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대로 안됐다 울고 있으니 엄마가

아버지 병원 대원하면 학교 보내주겠다

그 말에 속았다 이레 속고 저레 속고

한편생 다 갔다

 

 

 

 <시가 뭐고?>에 나오는 시는 크게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일상에 관한 시, 두 번째는 공부의 즐거움과 예전에 못 배웠던 것들에 관한 시 세  번째는 6.25 전쟁의 기억을 담은 시이다. 그녀들은 우리들과 다르게 어린 시절 6.25전쟁을 직접 몸으로 겪었던 세대다. 그렇기에 우리가 교과서로만 배웠던 6.25를 자기만의 삶으로 기억한다.

 

 

 

<여섯 살의 6.25>

 

여장미

 

 

내 나이 여섯 살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

면 소재지라서 좀 더 골짝 동네로 피난 가서

큰 제실 방을 하나 빌려

중간에 이사짐으로 경계선을 막아놓고

남쪽에는 딴 집이 살고

북쪽에는 우리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는 병이 위중하셔서 누워만 계셨고

양식은 엄마가 구해 오셔서 먹고 살았다

내가 머리 길어서 아버지가 집에서 깎아주시려고 했는데

내가 머리 깎기 싫어서 얼굴을 찡그리는데

엄마가 옆에서 야단을 치시는데

그때 비행기가 쌕 하고 지나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애 놀래다고

이불을 뒤집어 쒸우면서 가만 있으라고 그러셨다

나는 비행기가 무서운 것보다

머리 안 깎는게 더 좋았다

 

 

 그 나이의 6.25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하지만 이 시의 화자는 그 순간의 아찔함에도 '머리 안 깎는 게 더 좋았다'며 그 당시의 상황을 기억한다. 물론 이런 재치도 재치지마 나는 당시에 화자의 피난 모습이라던지 동선 같은 것들이 너무 세세히 나와서 그 점이 더 주목하게 되었다. 이사짐을 경계로 막아 두 집이 살아가는 그 구조며, 비행기만 떠도 겁을 먹고 이불을 덮어 씌우는 그 불안함. 그녀들은 한국사에서 가장 험난한 한 때를 직접 겪으며 살아 온 것이다.

 

 

 

<영감>

 

조덕자

 

 

젊은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주막에 있는 시간이 드 만낫다

호호백발 할배 대니

갈 곳이 없이 집박계 모르네

이재사 할마이가 제일 좋다 하네

 

 

<영감>이라는 시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정말 주책맞고,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골 어르신들을 보면 꼭 저런 할아버지가 몇몇 계셨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할아버지를 묘사하는 저자의 태도이다. 이 짧은 글 속에 그간 서러움과 아쉬움 묻어 나기에 나는 그 점이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집을 보다 보면 먼저 간 영감에 대한 그림움과 보고 싶음을 이야기 하는 시도 많다. '보고 싶어요.' 혹은 '사랑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로 표현되었지만 지금껏 적지 못하고 이제서야 감정을 터트리는 한송이 봉선화 꽃처럼, 단순한 글자지만 그 안에 든 그림움과 사무침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내가 엄마로서 그녀들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냈다고 생각하는 시로 마무리 하려 한다.

 

 

<쇠비름>

 

이종희

 

 

둘째 딸이 쇠비름 무침이 먹고 싶답니다

온갖 좋은 것 다 먹고 살았을 텐데

딸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어릴 때 나물이 귀해

밭에 잡초처럼 자라 쇠비름으로

나물을 무처서 먹였습니다.

그것이 먹고 싶다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짠합니다

이제 내 딸도 커서

 

추억을 더듬어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딸에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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