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5.15
주제: 뒤를 돌아보다
오늘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만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버젓이 인간이 된 모습으로 다시 뵈려고 했는데, 그 분은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지난 몇 년간 매 달 15일은 나에겐 우는 날이었다. 더럽고 힘든 세상 그냥 죽고싶다고 생각했던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공사판에, 배까지 타봤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다시 거리로 나오고야 말았다.
한 겨울의 거리는 더럽고 지저분했으며.. 위험했다. 그곳은 도시지만 도시가 아닌 또다른 세상이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낙오자였을 뿐,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공사판이라도 나가서 일이라도 하지. 세상탓을 하는 게 가장 비겁한 짓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세상은 날 왜 태어나게 했는지 원망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렇게 낙이라고는 가끔씩 던져주는 동전 몇 푼으로 마시는 소주 뿐이었다.
처음 그 분을 만난 것은 무료급식소에서였다. 노인들을 위한 자리에 하도 배고 고파서 조용히 줄을 쓰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눈치를 주면서 조용히 혀를 차기도 했다. 이제 그런 시선들이 익숙할때도 되었지만 아직 몸은 적응을 하지 못했나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배식을 받는데 갑자기 손등너머로 따뜻한 기운느 느껴졌다. 그리고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낮게 퍼졌다. 가끔 기침을 하기는 했지만 힘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많이 먹고, 다음에 또 오게'
눌러쓴 모자 너머로 한 없이 딱딱한 손이 내 손위에 얹혀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 뒤로 있는 노인들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빙긋이 웃으며 있었다. 순간 나는 쑥스러워서 얼른 배식판을 빼고는 공원 구석에 앉아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 날 국에는 유난히도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다.
그 분과의 두번째 만남은 겨울이 끝날 때쯤 살랑거리며 봄바람이 불때였다. 당시 나는 지난 밤 잠을 설쳐 지하철 장실 좌변기 하나를 골라잡아 꾸벅꾸벅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쿵쿵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순간 짜증이 일어났다. 무시하고 다시 자려고 하는데 다시 한번 쿵쿵쿵 소리가 났다. 뭔가하고 귀을 기우리고 있으니 내가 앉아있는 화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어떤 노인의 목소리가 노크 소리를 이어 들려왔다.
'아니 몇 시간째 변기에 앉아서 이러고 있으면... '
유난히도 긴 잔소리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 같았다. 노크 소리는 10분이 지났는데도 질리 않는지 계속 울렸다. 순간 계단에 자는게 여기보다 덜 시끄러울 것 같아서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는 상당히 화가 났는지, 뿔난 모습의 그 분이 서 있었다. 강직한 목소리에 언뜩 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난번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처음에는 그 분인지 알 지 못했다. 그러나 급식소와 화장실의 상황을 몇 번 겪어 보고나니 조금식 그 분이 눈에 띄였다.
처음에는 굉장히 잘살고 계신 분인지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던것 같다. 그런 사건이 있은 이후 그 분이 조금씩 눈에 띄였고, 항상 내가 있는 곳 멀지 않는 곳에 종종 그 분이 보였다. 그리고 항상 손에는 작은 책을 들고 계셨고, 언제나 큰 돋보기 안경을 쓰시고는 한자 한자 꾹꾹 눌러가며 책을 일고 계셨다.
어느날은 순간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신지 궁금해서 슬그머니 그 분 옆에 앉아보았다. 다른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장롱 깊숙이 들어가 있다가 나온 듯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그 분 그대로가 장롱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온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참동안 옆에 앉아 있었으나 그 분은 당최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한 석달 정도가 흘렀다.
그 날은 좀 많은 동전을 받았다. 그래서 소주에 특별히 안주까지도 살 수 있었다. 처음 거리에 나왔을 때, 술을 사면은 그 동안 아는척 하지 않는 거리에 사람들도 한 잔 얻어 먹기 위해서 온갖 아는 척과 친한 척을 해온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오고가며 술 마시는게 좋아 받아 주었으나, 술이 떨어지면 정말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 처럼 앙상하게 다 떨어져 나가 버린다. 그렇게 몇 번을 겪다 보니
이제는 술 친구들이 없이 혼자 먹게 되었다. 아니 내가 술에 찾아오는 놈들이 싫어 다 쫓아 버렸다는게 더 맞는 사람이다. 혼자서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한 잔 걸치고 있는데 그 분이 다가왔다.
' 뭘 그리 울면서 마시고 있나'
그 분이 처음으로 나에게 사적으로 건낸 말이었다. 처음에는 워낙 생뚱 맞아서 정말 내가 울고 있나 싶어 눈가에 손을 대어보았다. 눈가에는 전혀 축축하지 않았다. 그 분은 내 옆에 앉더니 내 손을 잡으시면서
'이렇게 손이 울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의 얼굴이 울고 있지 않은가. 어디 눈물을 흘려야만 우는건가 '
하면서 내 술을 한잔 들이켰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쳤다.
'울고 싶을 때, 정말 울지 않으면, 가슴이 울고, 손이 울고 얼굴이 운다네, 몸속에 나쁜 것들은 눈물로써 빼내어야지 울지 않지'
그 말을 듣자,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정말 눈물이 흘러나왔다. 벌건 대낮에 40대의 남자가 어떤 노인 앞에서 정말 대선통곡을 하면서 울고 있었다.
'에세이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것은 카드에 적혀 있다. (0) | 2014.05.18 |
---|---|
동이 트자마자 잠에서 깨어 (0) | 2014.05.16 |
남의 말을 엿듣는 중이다 (0) | 2014.05.14 |
나는 달밤에 태어났다 (0) | 2014.05.13 |
그녀는 멕시코에 숨어 있었다 (0) | 2014.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