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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마다 신촌에 있는 독서클럽에 간다. 말이 독서 클럽이지 독서동아리와 같다. 그곳에서 우리는 일주일간 읽은 책을 서로 리뷰하며 질문을 던지고 답이 없는 답을 찾아간다. 그 곳은 아무도 없는 서울 삶에서 유일하게 일이 아닌 사람들과 맺어진 새로운 공간이다. 우리는 오전10시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점심을 먹고 각자의 역활 속으로 다시 헤어진다. 일주일 뒤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독서클럽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횡당보도 앞에 섰다. 내가 사는 서울대입구 역인 평일이나 주말이나 사람이 많다. 횡단보도 앞에 서면 모두들 자연스럽게 발을 멈춘다.
그렇다. 횡단보도는 달려가기 바쁜 서울 사람들을 유일하게 말목을 잡아주는 장소이다. 워낙 빨리, 그리고 바삐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다보니 갑자기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을 때는 뜻하지 않은 사고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도 그 사고를 보고 말았다. 그러나 알아둘 것은 그 사고라는 것은 굳이 우리 인간들 만의 사고는 아니다.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던 동물들이 인간의 룰에 갖히면서 일어난 사고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횡단보도 중간에 새 한마리가 죽어 있었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미 죽은지 오래되었던 것 같다. 내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여자애 두 명은 서로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이야기를 한다. 꼭 저렇게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것 마냥 말이다.
직진신호에서 좌회전 신호로 바뀌었는지 골목에서 나오는 차들이 횡단보도 앞을 지나간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새의 시체는 바운스를 탄다. 다행인지 속에 있는 내장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차가 밝고 갈 때마다 귓털이 조금씩 흩어져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학교 때 처음 섰던 소설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나는 도로에서 버려진 우산을 묘사할 때 기형아 처럼 꺽여졌다라고 말을 했었다. 교수님은 나의 그런 표현을 너무 거칠다고 나무랐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너무 거칠고 정리 되지 않은 어설픈 묘사였던 것 같다.
실제 죽어가는 생명이었던 새를 바라보면서 처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새는 어쩌다가 저렇게 차에 치이게 되었는지 궁금증도 생겼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적어도 나와 같이 이 곳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들로 써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처음 새가 차에 치이는 것을 본 사람들도 이 횡단보도를 지나갔을 것이다. 오늘 재수 없었다고 말하며 지나갔을 것이며 로드킬을 한 운전자 역시 오늘 재수 옴붙었다며 거리에 침을 뱉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 생명은 아무런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차갑게 도로 위에서 식어갔다. 똑같은 횡단보도 위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오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오고 가는 우리들 처럼 그들도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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