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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독후감

생각이 많아지는 책, 자기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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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을 인생 책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필자는 인생 책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남아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 책 뭐야? 하는 생각이었지만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책의 저자인 에밀 아자르, 즉 로맹 가리는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가 시도한 것은 기존에 자기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레퍼런스들 중에서는 우리나라 작품인 '아홉 살 인생'과 세계적 명작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있다. 두 작품 모두 화자의 불완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린 화자가 자기 주변의 불안한 혹은 견뎌내기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두런두런 서술하고 있는 책들이다. 

 

화자의 불완정성. 이건 글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성질인 듯하다. 화자는 책과 현실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다. 우리는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다른 정보를 결코 얻을 수 없다. 오직 화자를 통해서만 화자가 전하고자 하는 것들만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제한적인 소통 창구인 셈이다. 그렇기에 화자가 불완전하면 잘못된 정보가 넘어올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독자의 착각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번 자기앞의 생에서도 그렇다. 화자는 언제나 자기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한다. (즉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 독자는 화자인 모모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며 그의 어깨에 앉아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칫 그가 느끼는 감정에 동조하기 쉽다. 하물며, 여기에 나오는 로자 아줌마의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이야기 속 로자 아줌마는 엄청 모모를 아낀다. 그런데 성인의 입장에서 볼 때, 왜 그녀는 모모를 다른 가정집으로 입양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유독 모모만을 입양보내지 않고 죽어가는 자기의 옆에 놓아둔다. 그리고 그에게는 새로운 것들을 배울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 그의 나이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것들을 숨기고 감춘다. 그리고 그게 그녀가 겪어온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 점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첫 번째 읽을 때는 발견하지 못한 점이었다.

 

하지만 모모는 그런 로자 아줌마의 행동까지도 사랑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가 느끼는 감정이 어디까지나 진심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의 앞부분에 아끼는 강아지를 팔아버리고 받은 돈을 하수구에 버리면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한다. 그런데 그의 뺨에는 너무나도 맑은 물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그 수분기를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독자에게까지도 센척하고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모모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과 로자 아줌마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모는 행복하기 위해서 좋은 가정으로 강아지를 입양시킨다. 하지만 실제로 입양시키는 일을 하는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데리고 있다.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한 듯하다. 

 

더군다나 이 소설 속 심상에는 2가지의 비유가 유독 도드라진다. 하나는 높고 높은 7층의 로자 아줌마가 사는 방과 지하의 마련한 그녀의 아지트다. 이 둘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잣대에서 보면 수직적 구조를 띠고 있다. 어쩌면 이상과 현실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또 다른 비유적 측은 바로 나딘의 직업에서 유추할 수 있는 가로 폭이다. 이 가로 폭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함께 간다. 그녀의 직업은 성우다. 각종 영화의 목소리를 입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처음 나딘의 직장을 보게 된 모모는 로자 아줌마 역시 그녀가 연기하고 있는 배우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소설 속 시간이라는 개념은 유독 잔인하게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시간을 되돌리는 상상을 하고 과거를 회상한다. 로자 아줌마가 그랬고, 죽음의 끝에 있는 하밀이 그랬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 우리는 주마등이라고 하는 과거 회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인들만이 하는 일이다. 모모는 지금껏 과거를 바라보기만 했지 앞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그가 했던 말은 그가 이제는 과거의 문법을 따르는 죽음을 앞둔 삶이 아닌, 앞을 내다보는 삶을 살 거라는 예언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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