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펜서를 봤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었다. 알고 있던 건, 3일간의 이야기라는 것과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장면은 다이애나가 자신의 옛집이 있던 지방에 있던 왕립 별장으로 찾아오는 모습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은 않다. 길을 잃고, 주위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도 하는 등 여러 고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찾아간 별장. 다이애나는 도착 후 '옛날 동네에서 길을 잃다니 바보 같죠.'라고 말한다.
특이한 점은 다이애나가 찾아가는 어디서든지 모두들 '다이애나'라고 하면서 그녀를 쳐다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당시 엄청난 셀럽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가는 곳 입는 옷, 들고 있는 장신구 하나하나 주목받지 않는게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봤던 첫 장면은, (이 사람이 왕세자비라서 알아보는 건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힘들게 찾아온 별장에는 한 집사가 있었고, 모든 여성들의 체중을 재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이애나는 왜 재어야 하냐고 묻지만 오랜 전통이라고 말하며, 하나의 장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체중을 재기 싫었지만 결국 체중을 재고 만다. 그리고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도 정해진 옷을 입어야 하며, 정해진 순서의 음식 등, 왕실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자기를 압박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그날 먹은 음식을 다 토하고야 말았다.
그 날밤 다이애나는 자기 아들 두 명이랑 방 안에 모여 진실게임 비슷한 것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식들과 허울 없이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크리스마스 미사를 가게 되고, 그 날에 정해진 옷을 입지 않았다고 모두의 눈총을 받게 된다.
영국과 같은 외국에는 결혼을 하면 여자들은 자기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걸로 알고 있다. 결국 다이애나 역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원래 자기의 성인 스펜서라는 성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같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계속 그녀가 왕세자비의 다이애나가 아닌 스펜서의 다이애나로 찾아가고자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현재의 삶에서 엄청난 억압과 고통스러움을 음악과 분위기, 비장감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영국 전통의 멋스러운 드레스이지만 그녀가 행동하는 모습들은 그 드레스와 반대되는 역동성의 움직임들이 영화 내내 나오고 있다. 그녀는 그런 옷이라는 차원에 그리고 전통이라는 차원에 자기를 가둬두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은 크게 3부분이 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미사 이후 모두들에게 왜 정해준 옷을 입지 않았냐고 눈총을 받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산책 가는 길을 따라나선다. 그러면서 어제 미사 때 입은 옷이 예쁘다고 말한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살짝 미소 띤 얼굴로 '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옷이 아닌 좋아하는 옷을 입어서 그렇다'라고 말한 것 같다. 그러면서 여왕이 지금껏 왕실의 전통에서 살아남은 그 근거가 살짝 보인 듯했다.
두 번째, 영화 후반부 그녀가 여러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외적인 상징은 드레스라는 것에 감춰져 있지만 그녀는 춤이라는 것을 통해 억압되어 있는 것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세 번째, 그녀의 시녀 매기가 전해준 쪽지이다. '당신을 좋아 하는 건 저뿐만이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는데, 여러 중의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좋았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고, 배경 지식이 있어야만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듯한 느낌의 영화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와 결말. 그리고 그녀가 겪었어야 할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중반 이후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몰입해 보기 좋은 영화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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