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이 있다. 제목은 불편한 편의점. 말 그대로 친절하지 않은 편의점이다. 그런데 '친절하지 않은'과 '편의점'이라는 두 단어는 상당히 배치적으로 어색하다. 우리에게 불편하다는 것은 곧 동네 구멍가게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만 들어서도 구멍가게 한 개씩은 동네 정승처럼 딱하니 있었다. 그곳은 여름 낯이면 동네 어르신들의 무더위 대피처였으며, 복덕방이었고, 아이들에게는 간식 창고였다. 그러던 구멍가게들이 하나둘씩 깔끔하고 현대식으로 무장한 편의점에 밀려 조금씩 사라져 갔다. 기본적은 전등의 밝기만 봐도, 편의점은 온통 밝은 주광색인데 반해 구멍가게는 천장에 달려 있는 한 두 개의 알전구 한 두 개 혹은 기다란 형광등 한 두 개가 다 였었다.
밖에서 보는 밝기 이외에도 구멍 가게라고 하면 동네 아줌마가 하는 그런 옆집 같은 느낌인 방면에 편의점이라고 하면 외지인이 운영하는 자기 볼일만 보고 나가는 단절의 공간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불친절하다니 조금 낯설다.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가자면 이 책은 서울, 그중에서도 낙후된 어느 동네에 편의점을 운영하는 어느 여사님이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지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된다. 그러던 도중 자기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는데, 말이 서툰 어떤 남자가 지갑을 주었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아끼던 지갑이었던지라 금방 찾아가겠다고 말하며 보상하겠다고 말하는데 전화를 건 남자는 자기는 서울역에 있겠다고 거기서 만나자고 한다. 여사님은 바로 대전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서울역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곳에서 노숙자 두 명에게 맞고 있는 또 다른 노숙자를 보게 된다. 맞고 있던 노숙자는 무언가를 꼭 쥐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자기가 잃어버린 그 지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숙자로 하여금 지갑을 돌려받은 여사님은 전직 교사의 자존심이 있어 꼭 보상하겠다고 그냥 돌아가려는 그 노숙자를 억지로 자기 편의점에 데려가게 된다. 그리고는 도시락 하나를 전해주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도시락이 먹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숙자는 편의점을 자주 찾게 되고, 우연한 계기로 그곳에 야간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된다.
노숙자가 일하는 편의점. 어떨 것 같은가? 이 안어울릴 것 같은 조합으로 이 불편한 편의점은 시작된다. 직원 자체가 서비스직 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손님을 대하는 것이 영 어설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령을 부리거나 게으르지는 않다. 다만 좀 느릴 뿐이었다. 그래도 알려주면 곧잘 따라 하고 실수 없이 척척 해낸다. 그렇게 시작된 노숙자 독고의 편의점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이야기다. 책은 여러 파트로 나눠져 있고 , 파트마다 편의점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쓰인다. 그곳에서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편의점 알바인 독고와 스쳐 지나게 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어찌 보면 너무 인위적인 것도 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너무 팍팍하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 이런 인위적인 일 한 두 가지 정도 있으면 뭐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독고가 일하는 편의점은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있어 꼭 필요한 장소이다. 취직을 위한 디딤돌이기도 하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터이기도 하다. 또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앉았다 쉬어가는 오아시스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매일 생기는 소재원이기도 하다. 독고는 이런 모든 일의 중심이 된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깨닫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서 좋았던 점은 낯섬을 낯설지 않게 두었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끝 부분은 클리세가 많아서 흥미도는 조금 떨어진다. 그에 반해 초반에는 '오호 이것 봐라'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요소가 많다.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는 편의점에서 사람의 정이 생기고 만들어져 가는 부분에서 어쩌면 처음에는 우리 주위의 구멍가게를 쫓아 보낸 타자였지만 어느 순간 그 타자 역시 우리 안에 녹아들어 온 이웃이 되어 버린 것을 느낀다. 오히려 너무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지 않는다. 나이가 몇 살인지, 술은 왜 마셨는지, 시집/장가는 안 가는지 일절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그 자리에 있어준다. 세상의 너무 많은 정보이 지쳐버린 우리들은 그냥 담담히 그 자리에 지키고 있는 그런 편의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에 나오는 이용객들은 모두 조금씩 상처와 아픔, 그리고 골치 아픈 고민거리들을 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편의점에서만큼은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고 가끔씩은 갑질을 하기도 한다. 독고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노숙자로 살기 전의 자신의 삶을 조금씩 떠올리곤 한다. 슬픔을 위로하는 건 더 큰 슬픔이라고 했던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또 스스로도 사회를 배척했던 사나이는 사회의 끄트머리에서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금 사회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호불호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재미 있을 수도 있고 뻔할 수도 있지만 책이 가진 구성과 책의 요소요소가 주는 상징성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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