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나는 과연 내가 맞는가?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가 자기가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 첫번째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 자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과
두 번째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투영해서 보는 방법.
그러나 우리는 보통 첫 번째 방법보다는 두 번째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가끔씩은 스스로 객관적인 나를 바라볼 때도 있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라는 책은 바로 이런 기준점을 제시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의 최종훈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갈까 말까 할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때는 사지마라
말할까 말까 할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때는 먹집마라
과연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우리는 이렇듯 할까말까하는 상황에서 방확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성을 알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심리가 작용기 때문일까?
최종훈 교수의 이런 글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쥐어주고
네가 선택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지? 그러면 일단 이 말대로 해봐!
라는 손짓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글귀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의 동요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선택권을
남이 제시해주는 방향성으로 놓고 가야하는가?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이 뭔지 뭐가 문제인지 확실히 알 필요가 있다.
가끔 이런 느낌을 받을것이다.
친구의 연예상담은 잘하는데, 자기의 연예는 정작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큰 장애는 남의 감정은 잘 파악하는데 자신의 감정은 잘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은 다르다는 특별성을 놓고 보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보는 것에 대한 생각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사랑인지, 끌림인지, 호기심인지
도저히 감별이 되지 못하고 확신을 못내린다.
그러다 결국 후회를 하게 되는것이다.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
이것 모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 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누가 지금 네가 앓고 있는 감정은 이런 감정이야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치유해야 해! 라고 말해주겠는가?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그런 점에서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우리에게 생각의 여유를 전해준다.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 판단하게 해주는 근거가 된다.
가이드 라인이 된다.
후회하고 싶지 않은가?
그러면 자신이 앓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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