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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브랜드

페리에 탄산수 _ 탄산수의 부동의 위치 페리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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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 [크리에이티브/브랜드] - 페리에 탄산수 _ 탄산수의 부동의 위치 페리에 -1






1898년 루이 외젠 페리에가 레 부이앙을 수유하게 되었다. 의사이자 정치가이며 

열렬한 온천 애호가였던 페리에는 수원지와 베르제즈 온천 시설을 매이한 후, '베르제즈 미네랄원터, 건강 음료 및 제품회사'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세 배의 탄산이 함유된 물을 포장하고 수송하기 위해 완벽 밀폐되는 유리병을 개발하는데 전념하였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프랑스인에게 물을 판다는 것은 도전이었고, 

자금 부족을 겪던 페리에는 세인트 존 함스워드를 만나게 되는데, 함스워드는 첫 눈에 광천수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1903년 함스워드는 페리에의 지분을 매입하고 광천수 개발에

전력했던 그의 이름을 따서 회사명을 페리에로 변경하였다. 그 후 함스워드가 운동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던 

인디안 곤봉에서 영감을 받아, 현재의 아이콘이 된 페리에의 세련된 녹색 보틀을 탄생시켰다. 






함스워드는 먼저 대영제국의 문을 드드렸다. 그의 아이디어는 최고 품질의 광천수로 인도에 주둔해 있던 영국

군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식민지를 시작으로 페리에의 인기는 버킹엄 궁으로까지 이어졌고, 1905년  페리에는 '영국 국왕 지정 공식업체'로 선정되었다. 또한 2908년 런던에서 열린 프랑스 -영국 박람회에서 페리에는 한 해에 500만 병의 판매고를 올린 

실적을 올해의 미네랄워터 대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페리에는 파리보다 런던과 델리, 싱가포르 등지에서 그 인기를 더해가고 있었지만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3년 1천 9백만 병의 생산량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 해외 각지에 수출되고

나버지가 프랑스에서 소비되면서 페리에는 "대중의 사랑"을 얻고, 마침내 프랑스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세인트 존 함스워드는 페리에 광천수 회사를 크게 발전시키고, 기업 정체성과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나, 같은해에 그는 끝내 생을 마감하였다. 






전쟁이후 미네랄워터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면서 페리에는 현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ㅇ르 겪고 있었던 페리에는, 1947년 주주들에 의해 회사가 매각되었다. 그 누구도 회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 때, 젊고 의욕이 넘치던 증권 중개인 구스타프 르방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버려지다시피한

광천을 찾아간 후 천연 미네랄워터가 와인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팔릴 수 있는 특별한 성장 가능성을 믿고 회사를

매입했다. 






구스타프 르방이 시설을 대대적으로 현대화 하면서 1948년부터 1952년 사이 생산량이 3,000만 병에서 1억 5,000만 병으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다. 공장의 규모는 6,000평방미터에서 26,000 평방미터 이상으로 확장되었다. 

2954년에는 베르제즈 공장 부지가 완벽하게 통합되면서 병뚜껑에서부터 포장상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한 곳에서 생산되었고, 

1973년부터는 랑그도크 유리제조 공장이 모든 병을 생산했다. 또한 구스타브 르방은 매출 증대를 위해 오랜 친구인 장 다브레에게 

페리에 브랜드의 홍보를 맡겼다. 이 파트너십은 현대 광고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토리 중 하나로손꼽히고 있다. 





1976년 초, 페리에 이 작은 초록색 병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뉴욕에 사무소를 열었다. 

1988년 페리에는 미국에서 약 3억병을 판매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수입하는 생수의 80%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이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플레이버 제품들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구스타브 르방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던 1990년의 페리에는 전세계 탄산수 시장을 선두하는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또한 1990년은 벤젠 위기로 인해 페리에의 브랜드 확장 정책에 타격을 입은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페리에는 전세계에 판매된 모든 제품을 리콜하는 등 모범저긴 대처를 함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리에는 1992년 네슬레에 인수되었다. 현재 네슬레 워터스 그룹은 페리에 비텔, 콘트렉스, 산 펠레그리노, 네슬레 퓨어 라이프, 네슬레 아쿠아렐을 비롯한 70여개 브랜드가 속해 있는 세계 음료 산업의 선두 주자이다. 





150여개 국가에 진출한 페리에는 가장 많이 수출되는 프랑스 음료 중 하나이다. 

언제나 유행을 앞서가는 페리에는 대담하고 색다르면서도 그 고유의 우아한 이미지를 고수하고자 한다. 

광고 캠페인에서부터 리미티드 에디션에 이르기까지 항상 문화/예술계 유명인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풍부한 버블이 만들어내는 최상의 상쾌함이 어우러진 독특한 맛.. 페리에는 최고의 선택이다. 





페리에는 근 100년이 넘는 기간, 온천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좋아하는 인기 음료로서 자리 잡기 까지 많은 시간과 굴곡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자본란이었고, 주인이 거의 4번 가량이나 바뀌면서도

페리에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본질적 브랜드를 흩으려 트리지 않는 다는 것은

대단한 브랜드 힘이 아닐 수 없다. 


탄산수에서 페리에가 부동의 자리에 위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페리에에 애착을 보인 사람들과 그 가능성을 언제나 믿었던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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