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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독후감

솔직함에 대한 담론 -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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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고르게 된 이유는 단지 제목에 끌려서다. 나는 대개 제목에 혹하는 성질이 있다. 예전에 샀던 '소환장'이라는 책도 제목이 마치 판타지소설의 소환 마법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샀고, 연금술사 역시 판타지스러운 제목이라 읽었었다. 이번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는 책은 일반 에세이라고는 조금 다른 형식을 취한다.

 

 저자인 김신회 작가는 자기의 이야기와 만화 속 보노보노의 이야기를 서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에세이를 풀어나간다. 예를 들어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 중 공감되는 말들이 몇몇 있다.

 

우선 취미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방송 작가 일을 하는데 어떤 출연진이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할 틈도 없이 술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걸 목격한다. 그 출연진은 아내에게 회식이 허락된 시간이 2시간 밖에 없다며 그 동안 많이 마셔야 한다며 잠깐의 여유도 없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2시간 후, 그는 정말 깔끔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작가는 이를 두고 시간을 쪼개서 술을 마시는 출연진을 보고 아직도 그런 굵고 짥게 마시는 취미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만화 보노보노에서 나오는 취미에 대한 담론으로 이었다. 그들은 각자가 취미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포로리 : 도움이  안 되는 것이어야 취미라고 할 수 있어.

 너부리 : 취미란 노는 거야. 어른이 '논다'고 하면 멋없으니까 취미라고 부르는 것뿐이야.

 홰내기 : 어른이 되고 나서도 놀기 위해 취미란 게 있는 거야.

 

 이렇듯 보노보노의 친구들은 취미를 '어른들의 놀이'라고 대체로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에 방점을 찍는 말이 하나 등장하는데...

 

  너부리 아빠 : 어른이란 말야. 어딘가 아이 같은 데가 있는 법이야.

 

어쩌면 이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장비부터 모으는 사람. 취미를 위해 거금을 서스름 없이 투자하는 사람 등. 그 행동을 보면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남감을 사기 위해 하는 행동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솔직함에 대한 담론"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솔직함을 숨겨야 잘 사는 거라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릴 적 <보노보노>와 같은 만화를 보면서 그리워 한다. 숨기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이 함께했던 그 시절. 그들에게 보노보노는 거짓말 보다는 궁금함을 서로 말하는 시대적 상징이 아닐까 한다.

 

"어른들이 하는 대화는 재미없다. / 어른들은 '무엇이' '왜' '어떻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 아이들은 / '무엇이' '왜''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데"

 

페이지 90쪽에 나오는 구절 중에 하나이다. 어른들은 그 팩트 뒤에 언제나 자신을 숨긴다. 솔직함을 뒤로 한 채... 그래서 재미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솔직함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가족한테도 나온다. 저자는 부모님한테 살가운 딸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무뚝뚝하기만 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는 저자. 하지만 그녀도 보노보노를 보고 느끼는 게 있는지 요즘에는 부모님께 오늘 뭘 먹었는지, 어디를 가는데 꽃이 예쁘다는 지 하는 것들을 보낸다고 한다. 어쩌면 보노보노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처럼 걱정스러우면 숨기지 말고 바로 걱정스럽다고 이야기 하라는 것 같다. 슬프면 슬프다, 아프면 아프다. 곤란하면 곤란하다. (특히 보노보노가 많이 그러지 않은가.)

 

너부리 : 나 좀 이해 안 가는게, 어제 뭘 했다느니 오늘 날씨가 어떻다느니... 그런 애길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포로리 : 아니야. 다들 그렇게 재미있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만약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다들 친구 집에 놀러 와도 금방 돌아가버리고 말 거야.

보노보노 : 그건 쓸쓸하겠네.

포로리 : 쓸쓸하지! 바로 그거야, 보노보노! 다들 쓸쓸하다구. 다들 쓸쓸하니까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구.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은 '치열하게 살지 않는 나는 이상한가?'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일 거다. 고양이 형은 책에서 산책을 자주 한다. 보노보노는 왜 그렇게 걷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고양이 형은 '오늘도 아무 일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걷는다고 다'고 한다. 아무 일 없음이 좋은 것 혹은 지루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산책을 하고 안심하는 것. 이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잣대와는 사뭇 다르다. 가만히 있어도 그게 나쁜게 아니고, 곤란해하거나 남이 싫어 져도 그게 이상한게 아닌 것.

 어쩌면 그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 지는게 아닐까. 그런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표현은 포로리 아빠의 말에서 훨씬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

 

포로리 아빠 :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어기는 거 아냐.

포로리 : 어긴 게 아니라 잊어버린 거예요.

포로리 아빠 :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잊어버리는 거 아냐. 젊은이들한테는 다음 날, 내년도 있겠지만 노인네들에게는 지금뿐이라고.

 

어쩌면 솔직하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꾸밈없이 정제해서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말을 할 때, 제대로 정제하지 못하고 말을 하곤 한다. 그렇게 바르게 정제되지 못한 말 때문에 오해가 싹뜨는게 아닌가 한다. 말을 하려면 너부리의 아버지처럼 바로 말해야 한다.

 

너부리 : 무슨 이런 부모가 다 있어! 언제 부모답게 행동해본 적 있냐고!

너부리 아빠 : 징징대지 마, 멍청아. 나는 부모답다느니 아이답단니 하는 말이 제일 싫어 네 부모는 나야. 그런데 왜 또 부모다워야 하는데. 네가 애비가 되긴 했지만 애비다워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너무 딱부러진 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너무리 아빠다운 말이다. 누구나 부모는 갑작스럽게 되는 것이고, 거기에 부모답다는 것은 통념적으로 붙어버리는 말이다. 가정은 다 다르다. 사람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단지 거기에 일반화를 붙여버리면 어디선가 이가 맞지 않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모는 부모다. 뭔가 답다라는 어미가 붙기에는 그 다양성은 하나의 정형화가 되어버리는게 아닐까.

 

꾸밈 없이 솔직해 지는 것. 이것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고 느낀 점이다. 좋으면 왜 좋은 지 이유를 대는 게 아니라 그냥 '좋다'라고 말하는 것.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용기를 내야 한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서 또 하나 공감 가는 부분은 아래 만화 부분이었다.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노보노이 말처럼 정말 이 세상은 모든 이의 '메모 투성이'이다. 그 수 많은 메모들이 서로 겹치기는 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메모다. 이런 발생의 전환을 보여주는게 이 책이 좋았던 이유다.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담론을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의 앞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자꾸 싸우는 일에 대해 저자가 한 말이 있다.

"싸우지 않고 산다는 말은 그 생활에 애정이 조금만 들어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잘 싸우는 사람일수록 잘 사랑한다. 싸움이 겁나서 말을 아끼게 되는 사람에게는 결국 마음도 아끼게 되니까. 서로를 이해하기만 하는 관계란 서로 이해할 만큼의 애정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   

 

화를 내는 것에 다른 페이지이긴 하지만 보노보노가 하는 말이 있다.

 

나는 화를 잘 못 낸다.

나느 화를 잘 못 낸다.

화를 내는 건 모두에게 '내 것'이 뭔지

알려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야옹이 형이 말했지만

나는 '내 것'이 뭔지 잘 몰라서

화를 잘 못 내는 것 같다.

 

 사실 나도 화를 잘 못 낸다. 화나는 일을 당해도 그 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아참, 내가 화 나는 일을 당했구나'하고 생각한다. 보노보노의 말처럼 어쩌면 나는 '내 것'에 대한 정의와 집착이 약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앞서 말한 싸우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과도 연관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소유욕'이 아닌가. '이 사람의 사랑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구.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이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 약한 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에 대한 관점이 많고, 그에 따른 파생되는 결과도 다르다. 그래서 무조건 '싸우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 하고 단언 할 수 없다. 다만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많이 싸우는데 이게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건가'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위의 글을 봤으면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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