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이 몇년도에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내 개봉은 며칠 되지 않는다.
언어의 정원을 이야기 할 때, 두 가지의 의견이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그냥 원조교제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감정 선을 잘 건드린 성장의 완성판이라는 것.
나는 그 중에서 후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이 작품을 읽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아니 언제나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표현력을 잘 다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남녀의 만남, 그리고 아픔, 슬픔. 이 모든 것들이 거리에서 나온다. 거리라는 말이 멀리 떨어져 있다의 거리가 아니다. 시간적 거리, 그리고 사고관의 거리 이런 거리.
두 사람은 처음 환경도 다를 것이다. 물론 똑같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그 둘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가 오면 공원에 앉아서 잠시 여유를 만끽한다.
물론 누구 한 명에게는 여유였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둘은 서로 같이 있게 된다. 나중에는 비를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
이 부분이 거리가 좁혀지는 부분이다. 신기한 것은 거리는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줄어들었다. 비틀렸다. 그리고 가끔씩은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이 둘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나이지만 나이를 구체화 시키는 신분이다.
학생과 선생. 어찌보면 우리나라 영화 중에 은교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까지 흘러가지는 않는다. 잔잔하다 하지만 공감이 간다.
누군들 그런적 없겠는가? 고등학교 선생님을 좋아했던 감정이. 물론 여학생들이 총각 남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 선생님을 좋아 하는 것은?
여기에서 나오는 여자 선생님의 나이가 27 살이라는 것도 많은 공감을 낮게 했다. 내가 지금 27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은 만 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나보다 1~2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나랑 같은 나이라는 것에서 왠지 모를 그녀의 나이가 주는 경계점이 조금 느슨하게 느껴졌다는 것도 맞다.
물론 그런 로맨스를 꿈꾼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거리차 나이차 신분차이를 끝내고 그녀도 결국 여자이고, 인간이고 언제나 고민하고 고통받는다는 것이다.
어릴 때, 젊은 여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그 선생님은 눈물이 많으셨다. 그리고 어린 우리들에게는 그것 또한 놀림감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어렸다는 것은, 선생님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여기서 작가가 아니라 남자주인공의 시선이 아니 심정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는 그녀를 사람으로 봤다는 것이다. 그 고통에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그리고 걱정하는 사람.
이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욕하는 당신은.. 어릴 때 좋아하던 선생님이 없었는가? 되묻고 싶다. 물론 이런 이 중적 논리 자체가 내 의견을 뒤집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결국 누구나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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